적용 범위

본 글은 FIDIC Red Book(1999)·Yellow Book 계열의 클레임 조항(20.1, 2017년판 20.2)을 기준으로 한 일반적 실무 대응 체계를 설명합니다. 개별 프로젝트의 Particular Conditions에 따라 세부 요건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해외 수주 확대가 계약관리 체계에 던지는 과제

한수원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원전 사업이 2025년 6월 본계약 체결로 이어지면서,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오랜만에 유럽 시장에서 대형 원전 EPC 프로젝트를 확보한 사례로 주목받았습니다. 이처럼 원전·플랜트·인프라 분야에서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이어지는 흐름은, 국내 발주자·시공사 구조에 익숙한 현장 조직이 FIDIC 표준계약조건이라는 낯선 절차 규범 아래에서 공사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을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국내 표준도급계약에서는 통지가 늦더라도 실체적 권리(공기연장, 추가비용 청구권)가 곧바로 소멸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협의와 정산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다투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FIDIC 체계에서는 통지기한이 조건부 권리(condition precedent)로 설계되어 있어, 기한 내 통지라는 절차를 이행하지 못하면 실체적 주장의 당부를 따지기도 전에 청구권 자체가 소멸합니다. 국내 실무 감각으로 현장을 운영하다가 이 구조를 뒤늦게 인지하는 경우, 이미 만회할 수 없는 지점을 지난 뒤인 경우가 많습니다.

통지기한이 조건부 권리로 작동하는 구조

1. FIDIC 1999년판 Sub-Clause 20.1 — 28일의 의미

FIDIC 1999년판 Red/Yellow/Silver Book 공통으로, 시공사가 공기연장 또는 추가비용에 관한 클레임을 제기하려면 그 사유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시점으로부터 28일 이내에 Engineer에게 통지해야 합니다. 이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공기는 연장되지 않고, 추가비용도 인정되지 않으며, 발주자는 해당 클레임에 관한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국제 판례에서도 이 28일 통지가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라 클레임 성립의 조건(condition precedent)이라는 해석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왔으며, 최근에도 상급심에서 이 원칙이 재확인된 바 있습니다.

2. FIDIC 2017년판 Sub-Clause 20.2 — 통지 절차의 통합과 형식 요건

2017년판에서는 시공사 클레임과 발주자 클레임 절차가 하나의 조항(20.2)으로 통합되었고, 어느 쪽이든 사유를 인지한 날로부터 28일 이내에 'Notice'를 제출해야 한다는 원칙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다만 2017년판은 이 통지가 반드시 'Notice'임을 명시적으로 표기한 별도의 서면으로 제출되어야 한다는 형식 요건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회의록이나 이메일, 진행보고서 속에 관련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유효한 Notice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구분국내 표준도급계약 실무FIDIC 클레임 절차
통지의 법적 성격사후 협의·정산의 참고자료 성격이 강함권리 성립의 조건(condition precedent)
기한 도과의 효과즉시 실권되지 않고 다툼의 여지가 남는 경우가 많음기한 도과 시 공기연장·추가비용 청구권 자체가 소멸
기산점사유 발생일 또는 확정일 기준인 경우가 많음사유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시점(인지 기준)
서면 형식정형화된 형식 요건이 상대적으로 느슨함'Notice'임을 명시한 별도 서면 요구(2017년판)

Engineer와 Employer, 그리고 클레임 판단 절차

FIDIC 구조에서는 발주자(Employer)와는 별도로 Engineer가 설계·시공 감독뿐 아니라 클레임에 대한 1차 판단 기능을 수행합니다. 2017년판 Sub-Clause 3.7은 Engineer가 클레임이나 그 밖의 사항을 합의 또는 결정할 때 발주자를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결정(fair determination)을 내려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내 감리·감독 체계와 달리, Engineer의 결정은 정해진 기간 내에 이루어져야 하며 그 결과에 불복하면 별도의 이의 절차로 넘어가는 구조입니다.

다만 모든 FIDIC 계약이 동일한 구조는 아닙니다. Silver Book 계열의 EPC/턴키 계약에서는 독립적인 제3자 Engineer 없이 발주자대리인(Employer's Representative)이 그 기능을 겸하는 형태를 취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클레임 판단 주체가 사실상 발주자 쪽에 가깝게 운영될 수 있어, 계약서상 감독자의 지위와 역할을 프로젝트별로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장 클레임 대응 체계,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

통지기한이 조건부 권리로 작동하는 체계에서는, 사유가 발생한 이후에 대응 조직을 꾸리는 방식으로는 늦습니다. 계약 체결 단계부터 통지·기록 관리 체계를 프로젝트 운영 프로세스에 내장해야 합니다.

  • 계약서(General Conditions + Particular Conditions)에서 통지기한, 통지 대상(Engineer인지 Employer인지), 형식 요건을 조항별로 정리한 내부 매뉴얼 작성
  • 공사 진행 중 발생하는 이슈를 '클레임 사유 발생 가능성'과 '통지 기산일'을 기준으로 상시 모니터링하는 트래킹 시스템 운영
  • 현장 조직(공무·공사·품질) 전체가 통지기한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는 초기 교육 — 통지는 법무·계약관리팀만의 업무가 아니라 현장 전체의 업무라는 인식 공유
  • Notice 제출 시 형식 요건(제목, 조항 인용, 제출 경로) 충족 여부에 대한 이중 확인 절차
  • Engineer/Employer's Representative의 결정에 대한 이의 및 상위 분쟁절차(DAB, 중재) 회부 기한 별도 관리
SRE 실무 체크포인트 — FIDIC 클레임 대응 체계
  • 적용 계약이 1999년판(20.1)인지 2017년판(20.2)인지, Particular Conditions로 기한·요건이 수정되었는지 확인했는가
  • 통지의 기산점을 '사유 발생일'이 아니라 '인지 가능 시점'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 Notice가 별도 서면으로, 조항을 명시하여, 정해진 수신자(Engineer/Employer)에게 제출되었는가
  • 계약상 감독자가 독립적 Engineer인지 발주자대리인인지 구분하여 대응 전략을 달리하고 있는가
  • Engineer의 결정 기한과 그에 대한 이의·상위 분쟁절차 회부 기한을 별도로 트래킹하고 있는가

통지기한을 이미 놓친 것으로 보이는 사안도, 계약서상 예외 조항이나 발주자의 묵시적 대응 여부에 따라 대응 여지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어 개별 검토가 필요합니다.